2013년 8월 11일 일요일

about drooled and slobbered




첫 EP individually wrapped와 첫 번째 앨범 between the tygh는
사실은 손익분기점 때문에 꽤 마음 고생이 심했던 두 음반이었다.
2012년 12월 실제하고는 거리가 멀겠지만,
일렉트릭 뮤즈는 사실상 2012년 12월 inidivually wrapped를
2013년 3월 between the tygh의 손익분기점을 넘은 것으로 기록해두었다.

individually wrapped는 몰라도
between the tygh는 내게 의미가 있는 앨범이기도 했고,
이 앨범 때문에 공연 스타일과 관련한 많은 고민을 하게되고,
앨범 판로를 구상하다가 현재의 일본투어까지 오게 된 것이기도 했다.

사실 individually wrapped와 between the tygh의 차이는 크게 없다.
두 음반 모두 수록곡의 대부분은
2008년 여름부터 2009년 봄까지 약 9개월간 미친듯이 써내려간
이전에 만들어 둔 40여 곡에서 선택한 것일 뿐이고,
몇 곡을 제외하면 시기상으로 모두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었다.
음질이나 앨범에 수록된 곡 순서 때문에 분위기는 서로 판이하게 다르지만,
자매품이나 다름없는 카탈로그였다.

2012년 봄 부터 다시 곡이 꾸준히 나오게 되었다.
예전이랑 다르게, 곡이 나오면 바로바로 iPad로 녹음을 해두고,
간단히 이러면 좋겠다, 저러면 좋겠다 식의 편곡도 장난스럽게 같이 해두기도 했다.
2012년 여름 새로운 곡들을 8곡으로 녹음한 데모 demo without words가 나왔다.
당연히 일렉트릭 뮤즈의 김민규 대표에게 전달했고,
그렇게 계속 회사일과 공연, 곡 쓰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2012년 여름부터 작업에 들어간 데모 demo without words에는
better, july, buried, addicted, fire, twinkled, dander, finite
이렇게 총 8곡이고, 나중에 hearer와 raffle이 추가되었다.

individually wrapped와 between the tygh가 모두 여름에 발매되어,
내심 겨울 발매를 염두에 두고 작업하길 기대하고 있었는데,
7월쯤 일렉트릭 뮤즈에서 사인이 왔었다.
그러나 8월 회사일로 10월까지 3개월간 대구로 발령이 나버렸다.
예전 between the tygh가 겨울 발매를 스케쥴로 잡고 녹음하려던 차에,
2009년 여름 대전으로 3개월 발령난 때와 비슷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
그래서 다시 새로운 앨범의 작업은 기약없이 뒤로 미뤄지게 되었다.

2012년 여름부터 다시 재기한 일본 투어를 시작으로
2012년 7월, 11월, 12월 이렇게 3번의 투어도 추가로 했고,
그 무렵 다시 일렉트릭뮤즈로 부터 사인이 왔다.
4월 발매와 5월 발매를 선택하라고 하길래, 난 4월 발매를 골랐다.
정말, 더운 날 발매하고 싶지는 않았다. 조금이라도 선선할 때 발매하고 싶었다.
그리고 스케쥴이 정해졌고, demo without words를 베이스로 새롭게 데모를 녹음했다.
이때 18곡을 일렉트릭 뮤즈로 제출했다.
몇 곡이 더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과거에 실리지 않은 묵힌 곡들도 녹음해 두었었다.
김민규 대표가 수록될 곡을 골랐고, 여기엔 미리 구상해둔 그의 편곡이 반영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편곡이 바뀌기도 했었고, 세션 후에 곡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
최종적으로 수록곡은 처음과 조금 달라지게 되었다.

이번 앨범 녹음을 위해 몇 가지 준비도 해두었었다.
우선 여름에 신용 대출을 받아서 기타를 몇 대 넉넉하게 장만해두었다.
20년 전부터 연주해보고 싶었던 기타들과, 10년 넘은 오래된 D-15도 다시 구했다.
녹음을 대비해 여름 내내 연주해 두었고, 드디어 2월 12일부터 녹음에 들어갔다.

녹음 과정은 지난 두 음반들과 동일하게 진행되었다.
오히려 프로듀서 김민규 대표의 스타일이 이제는 익숙해졌고,
앨범을 작업하면서 김민규 대표와 내가 서로 공감하는 순간이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김민규 대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앨범 발매가 딜레이 되는 것이 싫어,
일부러 3월 세째 주 최초 공장에서 출하되는 앨범을 만져 보는 것으로 빠듯하게 추진했었다.
서로 모험이란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 일정도 흔쾌히 합의점을 찾으면서 빠르게 진행했다.

녹음은 2월 12일 저녁부터 시작되었고,
녹음도 녹음이었지만, 회사의 출장과 개인적으로 집필 중이었던 책도 있었고,
일본 투어 준비와, 공연 준비까지 거의 2월과 3월은 제대로 잠을 잔적이 없었던 것 같다.
2월 11일 집에서 녹음에 쓸 기타 3대를 선정하고, 줄을 갈아 끼웠다.
D-18에는 원래 세팅되어서 나오던 마틴 MSP7200을
000-15M에는 평소 좋아하는 줄인 John Pearse #600L을
주력으로 연주했던 D-15에는 조금 두꺼운 줄인 John Pearse의 #700L을 걸어두었다.

2월 12일에는 feeshn't, picknick, sea, dander, fire, pervert를 녹음했다.
feeshn't와 fire은 000-15M으로 녹음을 했는데, 대부분 핑거피킹 곡들은 D-15로 녹음이 되었었다.
feeshn't는 사실 000-15M의 녹음 사운드를 체크하기 위해 샘플로 연주를 했던 곡이었는데,
긴장감이 없어서 였는지, 샘플 녹음의 연주가 훨씬 좋아지는 상황이 되어버려
나중에 추가로 몇 번 본녹음을 했지만, 결국은 샘플 녹음 버전을 그대로 수록했었다.
pervert는 최초 데모에는 없던 곡이었는데, 나중에 수록곡이 모자랄 경우를 대비해서 녹음해두었다가,
최종 앨범에 실리게 되었다.

2월 13일에는 sleet, raffle, addicted, july를 녹음했고, 모두 D-15로 연주했었다.
연주는 대부분 어려움 없이 몇 번의 재녹음을 거쳐 순식간에 끝이났다.

2월 14일에는 스트로크 곡들의 기타 녹음이 있었는데, 여기서 갑자기 문제가 발생했다.
스트로크를 위해서 처음에는 D-18로 연주를 받을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대부분의 기타들이 모두 탑이 가라앉아 버린것이었다.
D-15, 000-15M도 모두 핑거피킹에서의 사운드는 좋았지만, 스트로크에서는 버징이 심했었다.
결국은 14일 녹음 때 대안으로 가져온 D Cherry 06으로 녹음을 했었다.
다행히 D Cherry 06의 탑이 엥겔만 스프루스 였는데, 다른 기타에 비해 변형이 거의 없었다.
defecator, finite, twinkled, better, hearer, whore의 기타 녹음을 마쳤다.
hearer는 비트 때문에 고생을 했다. 워낙 박치에다가 기분 내키는데로 연주하는 스타일이라,
김민규 대표도 나도, 매트로놈 비트를 찾고, 거기 맞추어 연주하느라 진땀을 흘렸었다.

3일 동안 수록될 16곡의 기타 녹음이 모두 끝났다. 남은 건 보컬이었다.
이전 두 음반에서 항상 보컬이 문제가 되었었다.
노래할 때 기본 성량도 작을 뿐더러, 애초에 남의 노래를 못 부르니 곡을 만들어 부른게 계기가 될 만큼
그다지 좋은 싱어는 되지 못했다.
김민규 대표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고, 작년 여름부터 2집 앨범 작업 1년 전 부터 어드바이스를 했었다.
여튼 꽤 중요한 어드바이스였고, 공연 할 때 마다 연습을 해두긴 했었는데, 힘들긴 마찬가지 였다.

2월 17일 dander와 fire의 보컬 녹음을 했었고, dander에서 엄청 애를 먹었었다.
나중에 dander의 보컬은 결국 나도 마음에 들지 않아 뒤에서 한 번더 재녹음을 했다.
2월 20일에는 pervert와 hearer 녹음을 끝냈다.

2월 21일에는 제주에서 남기다 밴드의 비올라 연주자 조경래가 서울로 넘어왔다.
이날 오후 3시부터 새벽 3시까지 거의 12시간을 녹음했는데,
이땐 나도 울고, 김민규 대표도 울고, 조경래도 울었다. (그만큼 힘들었단 얘기였다.)
3월 세째주 앨범을 발매하기 위한 초강행군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날 addicted, july, sea, finite가 녹음되었다.
나중에 addicted와 july는 앨범 수록곡에서 제외되었다가, 비올라 때문에 앨범에 실리게 된다.

2월 25일 defecator와 july의 보컬을 녹음했다.
2월 26일에는 2story의 강예진이 sea, finite, raffle의 코러스를 녹음했다고 했다.
김민규 대표가 "뭐 강예진 파트는 생각보다 금방 끝났어요. 이제 남은건 김목인 피아노죠."라고 전했다.
2월 27일에는 better와 addicted의 보컬을 녹음했다.

3월이 되고 3월 1일, 김목인의 twinkled, hearer, finite 녹음이 끝났다.
나는 저녁이 되어서야 일렉트릭 뮤즈 녹음실로 가서, 의례 이전 음반들 처럼,
김목인의 피아노 세션 연주를 지켜보았다.
사실 이전 음반들과 다른 점은 김목인이 데모의 형편없는 내 연주를 기반으로 많이 손을 봐줬다는 것이다.

3월 2일 dander의 보컬 녹음을 다시 했고, whore의 녹음도 끝냈다.
사실 whore의 가사 중 child의 발음이 마음에 안들기는 했는데,
마지막 녹음이었고, 심리적으로 사실상 탈진에 가까워서 3번 테이크 하고 보컬 녹음을 다 끝냈다.

3월 4일 추가로 better에 짧은 기타 간주를 녹음하고, 믹싱으로 대충 분위기를 잡았다.
작업은 김민규 대표가 믹싱하고, 내가 듣고 "좋아요" 라고 말하면 끝나는 것이었다.
사실 이전 작업에서부터 그다지 앨범의 느낌에 대해서 할 말이 없었다.
그만큼 작업 흐름에 내가 전적으로 신뢰를 하고 있다는 것이 었고,
결국은 내가 들을 앨범이 아니기 때문에, 연주와 보컬을 넘어가서는 딱히 의견을 제시할 필요를 못 느겼다.

앨범 발매일은 4월 4일로 정해졌지만, 앨범은 3월 세째주 예정대로 나왔고,
지금 생각해보면 빠듯한 일정에 기적같은 일이었던 것이다.
16곡 중 11곡이 앨범으로 실렸고, 남은 테이크아웃 5곡은 일본 투어용 음반으로 제작했다.

앨범 타이틀은 2012년 부터 slobbered라는 단어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었다.
원래는 warmly slobbered 처럼 뭔가 침을 흘리는 다는 의미에 따듯함 같은 걸 넣고 싶었는데,
최종적으로 비슷한 의미인 drooled를 쓰기로 했었다.
모두 의사와 상관없이 입에서 침이 흐른다는 뜻인데,
drool은 보통 아기에게 많이 쓰고, slobber은 바보에게 많이 쓰는 단어였었다.
왜 침이냐고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slobber라는 단어를 참 좋아했다.

2013년 7월 17일 수요일

lyrics in drooled and slobbered


sea
바다는 모든 걸 삼켜버리네
그러나 절대 뱉어내질 않지
바다는 이 시간이
어려운 시간일 것이라는 걸 알고 있지

바다는 잡으려고 하지
그러나 그는 그것이 차갑다는 걸 알아
바다는 이 시간이
결코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지

주위를 걸어봐, 내 손을 잡고
주위를 둘러봐, 내게 손을 내밀어

바다는 자기 마음을 버릴
방법을 찾고 있어
길 마저 잃었지만
바다는 알고 싶어하지

주위를 걸어봐, 내 손을 잡고
주위를 둘러봐, 내게 손을 내밀어

twinkled
네게 다 주진 않아
그저 항상 너에게 전화하게 만들지
내 마음을 담아 너에게
어떻게 얘기해야 할 지 모르겠어

넌 날 웃게 만들지 않아
그저 멀리 도망칠 뿐이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왜 울고만 있는거니?

addicted
내 모든 걱정은 중독된 것들
내 모든 곡들과 당신

내가 잠을 이룰 수 없는 건 운명
내 모든 꿈들과 당신

내 모든 환상은 자비로움
내가 쌓은 벽과 당신

내 바구니에는 처절하게도
아무것도 없지

raffle
당신이 나가면 이야기가 시작되지
당신이 들어오면 이야기는 사라지지
뭐가 진짜인지 애써 찾아보겠지만
그저 그 사람들은 너를 바이러스 취급할 뿐이야

하루가 저물고, 피곤에 지치지
네가 했던 말들은 거짓말들 뿐이잖아
변명거리를 찾아보지만
그저 그 사람들은 네게 항의할 뿐이야

시장 점유율
소비자 동향
이것들이 너를 바보로 만들어
대폭 할인
응모권 추첨
이것들이 너를 입닥치게 만들지

pervert
난 변태라고 해
그냥 아플 뿐인데
그런데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아무도 믿어주질 않아

난 예민해서

잘 수 없지
그래서 꿈에는
아무도 없어

july
내 친구가 해주는 길고 긴 이야기
간단하게 내가 있을 곳으로 가는 중
내 방식으로는 자신있지만
그러나 그들은 그들 방식으로 날아가네

세상보다 훨씬 더 높고 높게
너를 바보로 만들만 한 것들은 모두 감춘채
네 방식으로는 자신있지만
그러나 그녀는 그녀의 방식으로 날아가네

fire
바람과 불
더 높이
사라졌지
너 만큼 어둠속으로
충분치 않아
발견할 수 없어
더 이상의 대화도
더 이상의 응시도 없어
나도 아니야
너도 그렇고

finite
길 위에서 유일하게 울리는 건 비슷한 발소리들
그들의 바람조차 전해줄 수 있겠지
모든 네 노래들과
모든 네 마음들을
결코 오늘보다 더 나았던
그 시절로 널 데려가줄 순 없겠지만

네 손에서 유일하게 떨리는 나의 작별인사
만약 소리칠 수 있다면, 목소린 계속 퍼져가겠지
모든 네 꿈들과
모든 네 회한들을
결코 오늘보다 더 밝았던
그 시절로 널 데려가줄 순 없겠지만

네 어깨에 기대어 잠깐 선잠을 자면
귀에 들리는 건 네 박동소리
모든 네 슬픔과
모든 네 다음날들이
결코 오늘보다 더 건강했던
그 시절로 날 데려가줄 순 없겠지만

hearer
빗 속을 운전할 때
넌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했지
"경고음을 들어봐요"
그 소리는 길 한가운데서 기름이 떨어진다는 거였어

빗 속을 달릴 때
난 찾을 수 있을거라 했지
"봐! 여기 주유소가 있어"
내가 그랬지, 항상 날 믿어도 된다고

두려움, 증오, 아픔 그리고 마음을 닫는 것
쉽게 치유될 수 있을거야
사랑, 애정, 그리움 그리고 마음을 여는 것
쉽게 채워질 수 있을거야

빗 속을 걸으며
넌 내가 따듯했었다고 했지
"그런데 손이 차가워졌어요"
여기의 여름 비가 낯설어서 그렇다고 했어

비를 피해 앉아서
난 내가 네 일상의 가치들로 부터
멀어졌다고 했지
견딜 수 없다고 했어

about feeshn't


노래 제목에는 어퍼스트로피 같은 걸 잘 안쓰는데,

아마 이 곡 제목이 문장부호가 들어간게 처음인 것 같다.
원 뜻은 fish net. 고기 그물이란 뜻이고,
일본의 호쿠리쿠라인에서 오오이토라인으로 환승하는
이토이가와역에서 곡 제목을 따왔다.
이토이가와의 한문표시는 糸魚川인데,
앞의 두 글자가 고기그물이라는 뜻이다.

2012년 7월 일본 투어때 마츠모토-카나자와 이동 때 이 역에서 40분을
반대인 카나자와-마츠모토 이동 때 이 역에서 1시간을 정차했었는데,
1시간 정차할 때, 역 밖으로 나와 이토이가와를 둘러보았다.
역 규모나 업무에 비해, 동네는 정말 조용하고 볼게 없었는데,
역 앞에서 직진하면 테트라만 있는 해안이 나온다.
나중에도 이 역과 마을의 풍경이 꽤 뇌리에 남아있었고,
일부러 그 분위기를 연주곡으로 만들어 보았다.

녹음은 조금 재밌는데,
당시 겨울이라 준비한 기타들 상태가 조금씩 좋지 않았다.
어떤 기타는 어떤 플랫, 줄에서 듣기 싫은 소리가 나고,
어떤 기타는 스트로킹 소리가 별로고.
그래서 당시 Martin 000-15를 가져와서
연습삼아 테스트 녹음을 했는데,
그때 녹음했던 곡이 feeshn't 였다.
그리고 아주 우연히, 그 테스트 녹음때 연주가 제일 좋았다.
생각보다 연주가 까다로워서,
나중에 김민규 대표도 흔쾌히 테스트 레코딩을 OK 테이크로 쓰게 되었다.


about hearer


drooled and slobbered에서 두 번째로 최신 곡이고,
플레이타임이 가장 긴 곡이기도 하다.
데모의 18곡 중에 유일하게 이 곡만은 내가 넣자고 주장,
김목인의 피아노가 없었다면 지루해버릴 버전이 될 뻔 했다.
연주할 때 혼란스런 박자 때문에 꾸중을 가장 많이 들었다.

2013년 7월 제주의 친구와 얽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가사가 제법 길다. 어쩌면 가장 명확하고 서술적인 가사.

about finite


스케치 데모 "demo without words"에는
곡이 만들어진 순서대로 녹음되어있는데,
finite가 끝에서 세번째.
즉, drooled and slobbered가 녹음될 시점에서
최신 곡이기도 했다.

군 입대 할 때 당시 여자친구와 함께 들어갔는데,
연병장에 모여, 입소대대로 걸어들어 갈 때
육군훈련소 정문에 끝까지 서있던
황량한 연병장의 노란색과 그녀의 실루엣이
꿈 속에서 나타났었다.

당시에 함께 만든 곡이 몇 곡 있었고,
나중에 같이 부르려고 혼자 만든 곡이 몇 곡 있었는데,
당연히 연주나, 가사는 다 잊었지만,
그 중에 유일하게 한 곡이 기억이 나서
그 곡을 모티브로 만들었다.

데모 때 혼자 엉성한 실력으로 넣은 피아노와 스트링은
김목인의 피아노와 조경래의 비올라 편곡으로 더 좋아졌다.
편곡에 때문에 이번 앨범 중 가장 김민규 대표를 괴롭혔던 곡.

about fire


현재까지 내 노래 중에 가장 높은 플렛에 카포를 쓰는 곡이다.
예전에 카포를 한 플렛씩 내려 끼며 공연을 해본적이 있었는데,
연주 곡수를 늘리기 위해 더 높은 플렛에 끼는 곡을 즉흥으로 만들었었다.
그리고 나중에 그 곡에 지금의 가사와 제목을 붙였다.

그냥 이별에 대한 짧은 단상인데,
바람과 불은 어쩌면 잘 어울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불이 쌜 때이고,
불이 약하면 쉽게 꺼지기도 하는 관계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약한 불이 되었을 때, 어쩌면 더 힘들었던지도 모른다.

about july


twinkled와 addicted와 비슷한 시기에 쓴 곡이고,
쳣 연주는 2012년 3월 제주 공연 때 했었다.
그 이후 이유없이 공연 땐 별로 연주하진 않는다.
처음부터 연주나 멜로디나 딱히 선호하는 편이 아니라
제목이나 가사도 꽤 늦게 진행되었었다.

앨범 버전의 비올라 역시 조경래가 맡아 주었고,
편곡은 김민규 대표가 맡았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혼자 연주하는 것 보다 꽤 좋았다.

전반적으로 2012년 7월 일본 투어 때 느낌으로 만들었는데,
그래서 비행기가 뜨고, 안전벨트 등이 꺼질 때 까지의
창밖 풍경을 그리면서 곡을 만들었었다.
그리고 비올라가 그 느낌을 정말 잘 살려주었다고 생각한다.

2009년 첫 일본 투어 때 실망과 좌절을 꽤 하고 돌아온 이후
2012년 3년 만에 다시 일본 투어를 시작했었다.
두려움과 기대. 무엇보다도 다시 한 번 욕심이 나기도 했었다.
그것이 회사에 처음 들어와 실수와 좌절을 겪는 옆자리 친구와
오버랩 되면서 2절이 추가되었다.

about pervert


2008년 경에 쓰여진 곡이었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도 했거니와,
EP "individually wrapped"와
첫 앨범 "between the tygh"에 깜빡하고
넣지 않은 곡이기도 했다.

자폐증과 관련된 다큐멘터리에서
자폐증이 있는 중년 남성이 인터뷰 중간중간에
"i'm pervert, i'm pervert"라고 외치는 장면과
그의 어머니가 "i'm nervous about people" 이라고
나즈막하게 말하는 장면이 꽤 강한 인상을 남겼다.
나중에 너무 기억에 남아 곡을 만들어 두었다.

스케치 데모 "demo without words"에는 없었고,
나중에 본 녹음이 들어가기 직전에 예비용으로 녹음했다가
이번 앨범에 최종으로 수록되었다.

about raffle


가사 부분을 남겨두고 공동작업을 위해 만든 곡이었고,
그래서 주법이나 진행이 평소와 다르게 만들어졌었다.
공동작업이 어려워지자 제목과 가사를 뒤에 쓰기 시작했는데,
원래는 공동작업용 데모로 "when you're out~" 부분과
"market share~" 부분만 있다가 한 파트가 더 추가되었다.

시기상으로 데모 작업이 끝난 후에 만들어 진 곡이라
앨범에서 가장 최신 곡이기도 하다.

회사에서 일 할 때
말은 많으면서 고집세고,
커뮤니케이션은 안되고, 절대 책임지지 않으려는
무사안위 직장상사를 빗대는 곡이다.

about addicted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한글 가사를 부탁했었던 곡이었고,
twinkled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곡이었다.
2012년 12월 스케치 데모 "demo without words"에서는
메인 연주 뒤로 첼로 스트링이 연주된다.

나중에 한글 가사를 부탁했던 친구와 연이 닿지 않아
결국 영어 가사로 써내려갔고,
가사는 집착하는 마음에 대해 짧게 써내려갔다.

원래는 앨범에 실리지 않을 예정이었다가,
비올라 세션 파트가 예상외로 멋지게 녹음되어,
김민규 대표 제안에 따라 본 앨범에 수록되었다.

about twinkled


2012년 12월에 만들어진 곡으로,
당시 이 단어를 좋아하던 친구에 관련된 곡이다.
내 얘기는 아니고, 그 친구의 옛날 얘기인데,
그냥 그 때는 그 친구를 괜히 위로해주고 싶어서
만들어졌던 곡이다.

2012년 겨울부터 새 앨범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곡들을 많이 쓰기 시작했는데,
당시 iPad의 GarageBand로 스케치를 많이 해두었다.
twinkled의 스케치 데모에는 피아노와 첼로 스트링을 깔았는데,
나중에 같은 레이블 소속 뮤지션 김목인이 세션 도움을 받을 때
그가 데모의 피아노 라인을 더 멋지게 편곡을 해주었다.

원래 제목은 twinkle이었는데,
그 친구에게 실망한 후 더이상 만날 일이 없어진 것도 있었고,
당시 아이돌 그룹에서 같은 타이틀의 곡이 나와
과거형인 twinkled로 제목을 바꾸었다.
사실 내 곡의 대부분이 별 이유없이 과거분사형을 취하는 경우가 꽤 있다.

about sea


앨범 녹음 시점에서 가장 늦게 만들어진 곡.
바다는 친구가 실제 닉네임으로 사용하는 별명이고,
그 친구가 처한 상황에 대한 곡이다.

편곡은 프로듀서인 김민규 대표가 직접하였고,
제주 남기다 밴드의 조경래가 비올라를 연주해주었다.
별다른 악보나, 편곡 방향이 없었지만,
프로듀서와 세션의 노력으로 멋진 결과가 나왔고,
2story의 강예진이 반복구에서 보컬을 함께 해주었다.

곡의 모티프는 해운대에서 여름에 쉽게 볼 수 있는
"이안류"에 대한 다큐멘터리 TV 프로그램에서 가져왔고,
첫 소절 "바다는 모든 걸 삼키지만, 결코 뱉어내진 않아"는
이안류의 특성도 있지만,
헤어진 사람을 못있는 그 친구의 마음도 함께 얘기하고 있다.
가사의 전반은 모두 그 친구의 이야기이다.

about picknick


2008년 여름에 만들어진 곡.
2008년 여름에 두 장의 8월 데모와 9월 데모에 모두 수록되었다.

처음 버전과 비교해 크게 바뀐 것은 없는데,
앨범에서 첫 곡으로 수록될 예정이어서
반복을 없애 간결하게 연주되었다.

손가락을 풀기위해 연습곡으로 만들었고
제목은 소풍을 의미하는 picnic의 말 장난이다.
엄밀히 말하면, 공식 보도자료에 나와있는
"닉 드레이크의 음반을 꺼내주세요"는
나중에 제목을 바꾸면서 부여한 의미랄까.

2012년 5월 16일 수요일

대학내일


기타의 노래를 들어라

소개를 부탁합니다.
- 안녕하세요. 기타 치는 드린지 오(Dringe Augh)입니다.

확실히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은 장르의 음악을 하는 분이란 생각이 듭니다.
- 제 생각엔, 세계적으로 포크를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웃음) 아직도 제 홈페이지엔 제가 하는 음악 장르가 ‘어쿠스틱 팝’이라 되어 있어요. 그냥 많이 양보해서 포크?

언제부터 기타를 치셨나요?
-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치기 시작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비틀즈만 들었어요. 다른 음악은 잘 모르다가 대학교 입학하고 나서 이것저것 다양한 음악을 듣게 됐고 밴드도 해봤죠. 밴드를 했지만, 곡은 어쿠스틱 기타로 만들었어요. 처음 만든 곡은 거의 팝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스타일이 바뀌었어요. 2008년 즈음에 브리티쉬 포크 쪽으로 빠져든 것 같아요. 닉 드레이크(Nick Drake), 버트 잰쉬(Bert Jansch), 펜탱글(Pentangle) 등을 많이 들었어요. 사실 스티브 잡스가 죽기 전날에 버트 잰쉬가 죽었어요. 그런데 아무도 몰라주는 거예요. 저는 아직 공연도 못 봤고… 마음이 안 좋았어요.

2009년에 첫 번째 EP가, 작년에 첫 정규 앨범 가 나왔지요.
- 첫 번째 EP는 거부감이 없을 곡 위주로 선곡했는데 별 반응이 없었어요. (웃음) 그러고 나니 아예 ‘개성 있게 가자’ 싶어서, 정규앨범에는 제 색깔을 보여주는 곡들을 골랐지요. 신나게 녹음할 수 있는 곡 위주로 골랐더니 이틀 만에 녹음 작업이 끝나 버리더라고요.

노래는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나요?
- 기타를 치다 보면 멜로디와 전반적인 연주가 나와요. 계속 들어보고 노랫말이 들어갈 여지가 있다고 생각되면 노랫말을 넣고, 아니면 연주곡으로 만들어요. 딱히 곡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메시지가 없어서 듣기 좋은 단어를 씁니다. 꼭 표현하고 싶은 메시지는 블로그나 트위터에 쓰면 된다고 생각해요.

가사를 영어로만 쓰는 이유가 있는지요.
- 들어온 음악이 비틀즈 것이니 영어 가사가 익숙하고 쓰기도 쉬워요. 또한, 감정을 숨기기에도 편한 것 같아요. 영어로 노래하면 모국어가 아니니 아무래도 익숙하게 들리지 않고, 그래서 보컬도 하나의 악기로 듣게 되면서 노랫말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게 돼요. 그걸 의도한 거죠. 사실 지금 쓰는 ‘드린지 오’라는 이름에도 별다른 의미가 없어요.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들려주세요.
- 바빠서 한동안 노래를 만들지 못하다 최근에 곡을 많이 만들었어요. 새 앨범 계획은 없지만, 만들게 된다면 수월할 것 같고요. 공연은 지금도 매달 빠지지 않고 하고 있어요. 홈페이지(www.dringe.com)에서 일정과 데모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창욱(douburook@gmail.com),  사진 김수영

2012년 4월 1일 일요일

lyrics in chocolate lounge


olivette
잊혀진게 많아
좋아, 나도 사라진 사람이 되어 줄께
내 친구들 전부다가 뭔가를 말해줘도
좋아, 넌 아무것도 아닌거야
그냥 꿈에서 처럼

날 속이는 것보다 더 쉬운 건 없었지
내게 상처 주는 것보다 더 쉬운 건 없었지
날 엿먹이는 것보다 더 쉬운 건 없었지
마침내 너도 내게 하찮은 존재가 되었는 걸

네 주위에 수없는 바보천치들
넌 마치 그들 사이에서 여왕이나 된 듯 했었지
지난날 많은 일들이 일어났어
좋아, 너와 관련된 전부다 잊어줄게
네가 원하는 것 처럼

simple din
혼자있는 네 얼굴에 비친 가로등 빛을 보았어
그저 우리 주위엔 단조로운 소음만 감돌뿐
내가 그렇게 멀리 왔는지 알지 못했어
그저 네가 그리웠기 때문에
널 따라갔을 뿐이야

우린 어디로 가고 있는걸까?
서로에게 어떻게 작별을 해야 하는 걸까?
꿈에서도 아닌, 상상에서도 아닌
그냥 우리 둘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을거야
언젠간 꿈이 될테니

unbated
이발소의 의자에 앉아
내 차례를 기다립니다
누군가는 검은색으로 염색을 하고,
다른이는 면도를 하고 있네요

내가 떠날 때 손을 흔들어 주며
할 수 있는 힘껏 미소를 지어주었는데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갈 시간이 되어 가야 할 뿐이었죠

제발 이름을 불러주세요
내가 가지 못하게 잡아주세요
내 그림자를 따라 함께 걸어요
당신이 옳았답니다

allbäck
마음속으로는 상대의 공을 가로챘지
잠깐이지만 당신과 내가 하나가 되는 순간
언제나, 약간의 공포와 약간의 변명이 있었지만,
좀더 뛰어 볼거야

무섭지 않다고 거짓말을 했었지
일요일부터 월요일까지 노래만 불렀었지
당신의 모든 걸 잊지 않기 위해
내가 죽을때 까지 함께할거야

mosedwit
마음 깊이, 내 영광스러운 모든 친구들에게
내가 모든 노력을 기울여 너희들의 귀를 먹게 하겠어
내 유일한 계획이었던 휴가는 물거품이 되었어
이런 내 고통이 어쩌면 오랫동안 너를 옥죄어 올거야

부드럽게 나를 나줘
그냥 내 친구로 남겠다고 말해
내 생각을 감춰둬
그냥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해
네가 가진 건 절대 잃지마
절대 잃지 않겠다고 말해줘
그리고 잘 지내
어쨋든 잘 지낸다고 말해줘

2012년 3월 27일 화요일

mosedwit


보통 공연 시 곡 제목을 읽어야 할 때는
"모스트비트"라고 했지만,
실은 우리 동네의 길 이름이다.
모세뒷길.
표지판 아래에는 "mosedwit-gil"이라고 쓰여있다.

모터사이클을 좋아하던 친구가
터널에서 차와 충돌해서 목이 돌아가
죽었다는 소식을 새벽에 들었다.
문득, 이제 친구가 없구나 하는 슬픔이 밀려왔다.

나와는 달랐지만,
나와는 말이 통하던 친구.
나는 바퀴를 싫어했지만,
그 녀석은 바퀴가 달린 물건을 정말 좋아했었다.

언젠가,
"너는 마약하다 27살에 네가 좋아하는 라커들 처럼 죽어라.
나는 오토바이 타다 27살에 사고나서 죽을테니"라고
농담처럼 말하다가, 정말 27살에 떠났다.

allbäck


2006년 위닝일레븐의 스웨덴 국가대표팀에서
10번 주전을 꽤차던 marcus allbäck을 찬양하는 곡이다.
절대 그를 추모하는 곡이 아니다.
allbäck은 살아있으니까.

unbated


어느 늦 가을.
주말에 시간을 내어 친구와
여행과 녹음을 겸하며
외가를 향했다.
아마도 10년 만에 가는 외가.

예전의 향기롭던 곳만 기억하고 갔던 외가에는
피를 토하며 누워계신 외할아버지가 계셨고,
그리고 별채는 벽지와 장판이 모두 썩어
폐가와 다름없어졌다.

여행과 녹음은 모두 취소되고,
그렇게 외할아버지를 간병하며 주말을 보냈다.
나중에 외할아버지는 폐암 말기로
막내 이모 결혼식 얼마 후 돌아가셨다.

일요일 오전 친구와 내가 떠나자
외할아버지는 힘든 내색도 없이
일어나셔서 동구밖까지 나와
동네 지인의 차를 잡아 읍까지 태워달라고
부탁하셨다.

차 뒷 창에서 할아버지는 끊임없이
손을 흔들고 계셨다.
내 이름을 불렀지만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simple din


the clientele와 비슷한 분위기로
만들려고 노력했던 곡이었던 것 같다.

olivette과 같은 대상.
우리집 앞에 내 물건을 놓고
말없이 가버린 그 사람을 잡기 위해
한 겨울 맨 발에 슬리퍼만 신고
뛰어서도 10분이 넘는 지하철역까지 뛰었다.

플랫폼에서 말없이 울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olivette


예전에도 같은 경험이 있었다.
금이 가버린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모든 열정을 쏟고 결국은
애증만 남아버린 상황.

같은 짓을 반복해버렸다.
그리고 예전처럼 상처받고,
치유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마도 그 때 부터
내 곡들에 누군가를 원망하는 가사가
담겨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